저스티니안은 페르시아 국경과 발칸 반도를 따라 제국의 방어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했고, 제국의 영향력을 코카서스와 아라 주민들 사이에서 확장하려고 했다. 바이오, 선교 활동과 개종, 보조금과 무기의 힘을 사용하여 점점 더 지속적인, 생태적인 궤도로 끌어들인다. 기적적으로, 동부 및 북부 국경은 저스티니안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0년대에 황제는 북 아프리카의 반달 왕국과 이탈리아의 오스트로고틱 정권의 정치적 불안정을 이용하여 로마의 직접 통치를 회복하려 하였다. 영토 많은 면에서, 헤기아 소피아의 재건과 비슷하게, 이것들은 저렴한 가격의 캠페인이었다. 길게 끌어 온 이탈리아 캠페인 동안 3만명의 병력이 현역으로 복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서부 요새들은 성공적이었다. 북 아프리카는 533–4로 떨어졌고 이탈리아는 535-553년 사이에 정복당했다. 550년대 초반에, 저스티니안의 군대는 심지어 남부 스페인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승리는 중앙 지중해와 서부 지중해에서 제국을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지배의 위치로 되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540년대 초반부터 주스티니안 통치의 첫 14년을 특징으로 했던 야망과 자신감이 오히려 더 침울한 태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한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저스티니안의 페르시아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사니안스는 여전히 제국의 동쪽 방어 체제를 위반할 수 있었다. 540년 페르시아의 샤 쿠스로 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의 방어망을 제거하고 안티오키아 시를 폐쇄할 수 있었다. 그가 그 재난을 보도하려고 하자 어지럽게 되었다. 둘째, 550년대 후반부터 발칸 반도의 제국 주의적 지위는 유럽의 정치적 군사적 불안정으로부터 벗어난 강력한 유목민 집단의 다뉴브 강 북쪽에 도착함으로써 약화되었다. 라시안 스테페 북쪽 코카서스와 서부 터크 제국의 흑해로 확장되면서 서쪽으로 밀려 와서, 아바타로 알려진 사람들이 다누비안 분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저스티니안이 처음에는 Avars를 그의 부족 정책에 포함시킬 수 있었지만, 그들의 도착은 불길했다. 아마도 더 결정적으로, 저스티니안의 내부적, 재정적, 종교적 정책들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Chalcedon에 대한 논쟁이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 지고 있었다. 553년 콘스탄티노플 제2차 회의에서 저스티니안의 신학자들은 사실상 관련 당사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단계에 이르러, Chalcedon을 둘러싼 갈등의 전통이 참가자들의 마음 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아서 교회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장에서 보았듯이, 540년대에, 우리가 2장에서 보았듯이, 중앙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흑사병이 처음으로 제국에 상륙하였다. 541년에 홍해를 건너는 시간 이집트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곧 콘스탄티노플, 팔레스타인, 시리아, 아시아 마이너, 발칸 반도, 북 아프리카 그리고 이탈리아로 퍼져 나갔다. 제국의 도시들과 그들의 시골 고지대는 그 질병의 초기 영향과 그 후의 재발에 의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제국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간의 고통을 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의존할 수 있는 납세자들의 수를 극적으로 줄였다. 이는 결국 행정 마비로 이어졌고, 다수의 저스티니안지방 개혁은 번복되어야 했다. 565년 저스티니안 죽었다. 궁정 시인 코리푸스가 말했듯이 그의 놀라운 죽음은 그가 세계를 정복했다는 분명한 징조로 보여졌다. 만인이 애도하는 가운데 그만이 경건한 얼굴을 하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저스티니안의 기억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콘스탄티노플에 지어진 물리적 기념물들이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었던 것처럼 다음 세대의 황제들의 마음 속에 크게 떠오르게 한다. 중세의 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티니안의 웅장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약속했던 통치는 결국 실망으로 끝났다. 저스티니안은 비록 더 크긴 했지만 현저하게 허약하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제국, 그의 후임자인 저스틴 II에게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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